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해석의 문제(1): JTBC <고전적 하루>에 부쳐 음악

올해 초부터 JTBC에서 젊은 연주자들을 초대해서 이야기와 연주를 듣는다. 페이스북의 <고전적 하루>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반가운 기획이다. (https://www.facebook.com/jtbcclassictoday/videos/370962656619631/)

9분 20초부터 김선욱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음악 외적인 이야기들로 음악을 설명하려고 하면 반드시 한계에 부닥친다는 얘기다. 작곡가의 삶에서 작곡의 배경이 되는 에피소드를 뽑아내고, 거기서 어떤 감정을 추출해내고, 그래서 음악을 그 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것... 음악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여기에 대해서 피아니스트가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 평범한 청중들이 가질 법한 질문들에 그친 JTBC와 기자의 식견이 아쉽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작품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음악 외적인 주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이거나, 아니면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고 그냥 연주만 할 수 있을 뿐이라는 이분법적 편견이 있다. 이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작곡가의 상실감을 표현한 것이다, 어떤 사랑 이야기를 음악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 작품을 이해했다고 하기 위해 외워두어야 할 핵심 지식은 이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정보들이 음악 자체와 좀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면, 어쩔 수 없다, 그 간격이 음악의 신비이니, 그냥 조용히 들어라. <고전적 하루> 역시 매번 이런 이분법적 편견을 반복하고 있다.

겉도는 얘기만 하거나, 아무 얘기도 할 수 없거나. 이 양자택일은 우리의 음악 생활을 빈곤하게 만들고 있지만, 사실 전문적인 언어에 기대지 않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고전적 하루> 역시 전혀 탓하고 싶지 않다. TV 눈높이에서 그런 얘기를 하려면 적지 않은 내공을 갖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김선욱에게서 그런 내공이 엿보였기에 못내 아쉽다. 그는 음악 외적인 근거, 즉 야나첵의 삶으로부터 작품의 근본 감정을 끌어내는 데 의문을 표했는데("슬픈 감정을 가지고 쳐야겠다, 그러면 슬퍼지나요?"), 여기에 대고 기자가 단숨에 "어, 아니에요, 어때요?"라고 반문하는 지점은 정말 아쉽다. 슬픈 감정을 악보 속에서 찾아야지 왜 곡 바깥의 사실에서 찾느냐는 얘기 아닌가.

김선욱이 이 지점에서 당황했다면 자기 생각이 막혀서가 아니라 기자가 성급하게 몰이해를 드러낸 탓일 것이다. 그의 말 뒤에 한 3초만 시청자가 생각할 시간을 줬더라도 뭔가 울림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 편집이 개입한다. 이후 부연 설명을 좀 하고 "생각을 더 정리해서 말하겠다"고 하는데, 기자는 여기에 다시 "감정을 정형화하지 말라는 것이냐"라고 묻는다. 여전히, 감정 표현을 하고 싶으면 음악 바깥에 있는 감정을 가져와서 음악 안에 주입하거나, 아니면 감정 없이 악보대로만 치든가, 이런 양자택일이다.

여기에 대해 연주가 매 순간의 선택이라고 답하는 김선욱의 말은 동문서답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자의 의표를 정확하게 찌르고 있다. 어떻게 주변의 잡설이 아닌 음악 작품을 구현하는 과정 속에서 진짜 음악적 감정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연주를 선택의 연속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김선욱은 유창하게 말하지는 않아도 자신의 일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가 나중에 한 말을 끌어오면, "텍스트를 텍스트 있는 그 자체로 전달하는 것."

하지만 이 시점에서 기자는 오직 김선욱을 피아노 앞으로 보내는 데만 관심이 있다. 김선욱이 말이 막혔다->피아노 앞으로 가서 멋진 연주를 했다, 이렇게 시나리오를 짜 놓고 상황을 몰고 간 것이다. 이것은 두 번째 베토벤 연주도 마찬가지다. 김선욱이 대답을 끝까지 했다면, "새로운 월광 소나타 해석이 가능한가"라는 기자의 질문이 우문이었음이 드러났을 것이다. 해석에서 중요한 게 새로움이 아니니까. 그런데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힌 틈을 타서 기자는 김선욱을 성급히 피아노로 보낸다. 피아니스트는 월광 1악장을 치면서, 달빛에 관한 연상이 어떻게 텍스트의 해석을 그르치는지 직접 보여주면서 처음에 한던 얘기의 답에 도달한다. 오랜 신화를 가지고 예술가의 이미지를 만들어 흥행을 하려는 제작진 앞에서, 김선욱은 집념을 가지고 진실을 말한다. 음악 텍스트 자체가 아닌 것은 허울이라는 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김선욱이 말해줄 수도 있었던 것은 말문이 막혀서 피아노로 가는 음악가라는 통속적이고 신화적인 이미지보다 훨씬 높은 데 있다. 음악을 오직 음악으로 다루겠다는 것은 음악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전문용어들로 분석적인 이야기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온갖 지식과 환상, 알리바이, 온갖 "허울"을 걷어낼 때 우리는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우리의 마음 속에 어떤 자국을 남기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선욱이 꿰뚫어보고 있는 저 "허울"이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끼치고 있는 해악은 정말로 크다. 그의 식견을 다른 자리에서 언젠가 다시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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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ludium :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해석의 문제(2): 연합뉴스의 독주회 비평에 부쳐 2017-03-22 21:47:05 #

    ... 짚어보고자 한다.표면적으로 보면 김선욱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베토벤 소나타의 표제를 배제하고 절대음악의 견지에서 작품에 접근하겠다고 선언을 했는데(이 블로그의 이전 글 참조), 최은규는 여전히 작품의 표제를 해석의 준거로 제시하는 듯하다. 김선욱의 입장이 당연히 옳으며, 쓸데없이 표제를 끌고들어온 것이 최은규의 패착이다. ... more

덧글

  • ㅇㅇ 2017/03/28 21:21 # 삭제 답글

    좋은 글 감사히 읽었고 상당히 공감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많이 배우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전반적으로 아쉬웠고 방송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봤을때 그렇더라도 다수의 문항속에 변별력을 갖춘
    문항을 넣어 열심히 공부한 학생을 가려주는 배려 정도로 좋은 질문이 두어개 정도는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기대하기엔 너무나 큰 욕심이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연주자 김선욱을 바라보는 관점과 정확히 맞는 분을 온라인으로나마 뵙게 되어 정말
    기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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