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소콜로프에 관하여 음악

3년 이상 소콜로프를 불편하게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모르기도 했고, 주변에 그의 팬들이 많아 섣부른 비판을 삼갔는데, 그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듣고 구역질이 날 뻔했다. 흥분 상태에서 몇 자 끄적였다가, 한나절 지나고 보니 소콜로프 비판을 어떤 문제의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감이 잡힌다. 음원을 전달해주신 분께는 부득이 날선 말을 쓰게 되어 송구하면서도, 언제나처럼 뭔가 깨닫는 기회를 주신 데 감사드린다. 음악에 대한 사랑은 논쟁에 열려 있다고 믿는다.

내 생각에 그리고리 소콜로프는 가짜다. 바흐와 베토벤에서 스크랴빈, 프로코피예프에 이르기까지, 그는 모든 것을 과장하며, 연출할 뿐 노래하지 않는다. 음악에는 지나가듯 표현하고 얇게 덮어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그렇게 연주하면 초심자들은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거기에 다 현미경을 들이대서 뉘앙스를 보여준다는 명목으로 뉘앙스를 깨는 연주는 초심자를 위한 연주라고밖에 할 수 없다. 자기만의 분위기로 곡을 일관성 있게 지배하기 위해 곡이 가진 양식적 다양성을 희생하는 연주는 청자에게 자기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한 이기적인 연주라고밖에 할 수 없다. 빛나는 음색을 강조하기 위해 리듬을 깨는 연주는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일 하면서 배경음악으로 듣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인류가 남긴 가장 지적인 음악에 어울리는 연주라 할 수 없다.

그 어떤 자기 스타일의 기조도 작곡가가 써 놓은 지시어보다 우선할 수 없다. 물론 연주자는 학자가 아니며 지적 활동으로서의 해석이 연주의 전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적 완성에 충실한 장인을 존경할 수도 있고, 자기 스타일의 아우라가 확고한 나르시스트를 사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을 합쳐놓으면 예술가가 아니라 괴물이 된다. 소콜로프는 장인이면서 나르시스트다. 많은 팬들의 불쾌를 감수하고 말하는 이유는 그가 단지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연주자가 아니라 클래식 음악의 죽음에 근접한 연주자이기 때문이며, 특이한 개성을 가진 한 명의 예술가가 아니라 클래식 소비자들 사이에서 표준적인 거장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 인문학에 익숙하신 분들은 나의 소콜로프 비판이 후기 니체의 바그너 비판을 가져온 것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바그너의 경우>에서 말하는 것처럼 소콜로프는 데카당스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 또한 데카당스적인 인간이며, 데카당스 예술을 자주 칭송하지 않았던가? 나는 여전히 비제보다 바그너를 좋아하며, 데카당스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이라고도, 사회에서 치워야 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1. 하지만 소콜로프는 자신의 데카당스를 은폐한다. 늘 신사적이고 진중하며 남자 어른의 중후한 풍모를 놓지 않는다. 소노리티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시하는 패시지를 예로 들어보자. 이것은 반지성적인 해석이지만 지적인 연주의 외양을 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악보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듯한 수비토 피아노를 보자. 이것은 냉정을 찾는 듯한 제스처이지만 감각적인 짜릿함에 불과하다. 맑고 풍부한 음향으로 울려퍼지는 그의 고요함은 청자에게 작품 앞에서 깊이 명상하는 느낌을 주지만, 명상하고 있다는 기분을 즐기는 것은 명상이 아니다. 소콜로프를 사랑하는 청자들에게 이 억압된 데카당스에 대한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질문해본다. 그러나 억압과 극복은 분명히 다른 것이며, 데카당스의 감동은 자신에 대한 솔직함에 있다. 굴드가 솔직한 데카당이라면, 소콜로프는 비겁한 데카당이다.

2. 소콜로프는 자신이 데카당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로, 데카당스가 건드려서 성공할 수 없는 영역, 즉 가장 고전적인 텍스트의 해석을 건드리고 있다. 반데카당스적인 고전 작품은 최소한의 연주력만 있으면 스스로 말을 할 줄 안다. 작품이 스스로 말하는 입을 틀어막는 것이 작품의 재해석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데카당스가 통할 수 있는 영역은 정해져 있다. 소콜로프의 접근법이 성공하려면, 작품을 완전히 자기만의 개성적인 분위기로 물들일 수 있어야 한다. 바흐, 베토벤, 쇼팽의 작품이 연주자 한 사람의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만만한가? 데카당스는 오직 그 작품들에 기생할 수 있을 따름이며, 이를 부인하는 것은 고전음악 해석자에게 허락된 적 없는 오만이다.

3. 솔직한 데카당이라면, 굴드의 모차르트나 쇼팽처럼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나머지를 포기할 것이다. 굴드는 자신이 꼭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대신 전체 해석을 일종의 미완성으로 남기며, 들을 사람은 듣고 말 사람은 말라는 태도를 취한다. 소콜로프는 그렇지 않으며, 어떤 순간에든 집중을 강요한다. 작품에 관심이 있건 없건, 그의 해석에 동의를 하건 말건 그가 연주를 시작하면 일단 들어야 한다. 그는 어떻게든 주목을 끄는 장치로 곡을 시작하며, 어마어마한 힘으로 청자의 주의를 붙잡아둔다. 나처럼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스피커에서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호소가 앞뒤 따질 필요 없는 매혹이 되기에 소콜로프는 또 금욕적이다.

소콜로프의 아집, 그 마력을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연주력이라 해야 할 것인가? 드뷔시는 청자의 집중을 강요하는 음악을 두고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소리지르는 사람에 비유한 적이 있다. 또 그렇다 쳐도 그런 연주력을 예술이라고 하기 어렵다. 소콜로프의 마력은 마치 청자를 더 쉽게 작품 자체로 이끌어줄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 착각이다. 강요된 집중과 자발적인 집중을 구별해야 한다. 한슬리크는 수동적인 몰입 속에서 작품의 흐릿한 분위기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청자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을 줄여주는 연주는 있을 수 없다.

작품 자체로 가는 지름길은 없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오직 우리 마음을 빼앗는 분위기였다면, 오래된 고전 작품들은 필요가 없다. 소콜로프는 우리를 미학적 나태로부터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2017.1.16)

덧글

  • 정진호 2017/03/15 22:13 # 삭제 답글

    소콜로프 팬이지만 나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언드라시 시프 같은 다른 대가들도 글쓰신 분께서 지적하신 것 처럼 아주 미묘한 뉘앙스들에 대해 언급하며 구조와 또렷한 음색을 강조하는 러시안 피아노 스쿨을 은근히 비판한적이 있죠. 하지만 디아벨리 연주 처럼 아주 지극히 왜곡 되게 녹음된 앨범 가지고 이런 평을 쓰시는 거 보면 적어도 피아노 감상에 있어선 완전한 초보라는게 보이네요. 저는 소콜로프 시프 코롤료프 타로 등 당대의 명 피아니스트의 실황을 쫓아 유럽 곳곳을 여행한 사람입니다. 그들 어느 누구도 앨범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세밀한 컨트롤과 뉘앙스 그리고 풍부함을 실황에선 들려주죠. 그리고 그 중에서 소콜로프가 단연 압권이었던 점은 그 무한한 진정성과 순수함에 있어서 입니다.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나라인 오스트리아에 잘츠부르크 출신 평론가들이 소콜로프 함머클라비어 실황을 듣고 베토벤과 저 은하수 너머에서 둘만이 고독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괴짜의 도시로 이름 난 암스테르담의 평론가들도 소콜로프 실황을 듣고 소콜로프는 미스터치 마저도 저 거대한 우주에서 아름답게 떨어져 내려오는 별똥별 같이 느껴졌다고 평했습니다. 저 사람들도 뉘앙스 데카당스 못 들어 그런 평을 내리겠습니까. 저도 함머클라비어 실황을 바트키싱엔이란 작은 독일 마을에서 들었는데 정말 그 때의 기억 때문에 저는 DG 함머클라비어 앨범도 안듣는다죠.


    말씀하신 디아벨리 저도 잘 안듣는 앨범입니다. 소리가 철소리가 강조되어 상당히 듣기 피곤합니다. 그렇지만 이는 녹음의 문제입니다. 보통 소콜로프는 실황이 다른 피아니스트의 스튜디오 녹음 이상으로 완벽해서 이게 실황인지 아닌지 녹음 상태가 얼마나 미흡했는지 판단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소콜로프의 실황을 제대로 듣고 비슷한 평을 내리신다면 이해하겠으니 꼭 돈 모으고 시간 내셔서 소콜로프 실황을 듣고 오실 수 있음 좋겠습니다.
  • postludium 2017/03/16 00:17 #

    정진호 님 안녕하세요. 제가 "피아노 감상에 있어선 완전한 초보"인지는 좀더 대화를 나누어보고 판단하셔도 좋으리라 봅니다. 소콜로프를 깊이 들으신 분들의 반론을 저도 좀 기다린 감이 있는데, 긴 덧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애호가들이 더 진지하게 비판하고 과감하게 논쟁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보다 분석적으로, 근거를 갖추어 소콜로프의 연주를 옹호해 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의 비판이 실황에 기초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게 비평할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정작 소콜로프의 연주에 대한 분석은 다른 평론가들의 수사로 대체하시는 것은, 정진호 님 본인의 감상에 의거해서 소콜로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실황에 대한 지적은 매우 중요하며, 또한 실황을 감상하기 위해 정진호 님께서 기울이신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소콜로프가 실황에서 보여주는 완벽한 장악력과 컨트롤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는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소콜로프의 연주를 들으러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돈이나 시간을 많이 들일 필요도 없고, 몇 번 가볼까 했던 적도 있는데, 아무래도 음반을 더 감명깊게 들었던 연주자들의 공연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자, 그런데 문제는 정진호 님의 덧글이 제가 글 속의 특정한 내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진호 님과 저의 의견은 완벽하게 양립 가능합니다. 반면 저의 논지가 실황을 듣지 못한 자의 착각에서 온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제 글을 상세히 읽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1) 저는 소콜로프의 "세밀한 컨트롤과 뉘앙스, 풍부함"에 대해 말씀하신 데 완전히 동의하며, 이 점에 있어서 소콜로프는 오늘날 보기 드물게 탁월한 피안스트이고, 심지어는 부족한 점이 많은 스튜디오 음반으로 들어도 여느 피아니스트들을 가볍게 뛰어넘는다고 봅니다.

    2) 소콜로프의 컨트롤/뉘앙스/풍부함이 종종 우주의 이미지에 비견된다는 점도 알고 있고, 또 동의합니다. 소콜로프는 분명히 음악 작품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 또 음악 감상을 통해 청자가 이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며, 어떤 진공 상태에서 작품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충분히 초월적, 천상적, 우주적이라고 평할 수 있다고 봅니다.

    3) 앞의 두 가지를 요약해보면, "컨트롤과 뉘앙스 그리고 풍부함"은 연주 기술의 영역이고, "은하수 너머"나 "거대한 우주"는 음악의 분위기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연주 기술과 분위기가 "무한한 진정성과 순수함"을 보장하는가? 저는 이 점에서 정진호 님께 동의하지 않습니다. 진정성과 순수성은 작품 해석의 문제인데, 이것은 연주 기술 및 분위기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저는 소콜로프가 가지고 있는 연주자로서의 장점을 가감없이 인정하는 동시에, 그의 연주에 깔린 작품 해석의 기조를 문제삼고 있습니다.

    4) 명확하게 잘 쓰지는 못했지만 저는 해석의 기조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뉘앙스 분명하게 들려주는 해석의 문제에 대해, 데카당스적 성향과 그 은폐에 대해, 고전 작품의 해석에서 불필요한 수준의 강력한 장악력에 대해, 정적으로 통제된 음악과 그 음악을 들을 때의 수동적인 몰입에 대해. 이 이야기들이 전부 <디아벨리 변주곡>의 녹음 문제로 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디아벨리 음반이 이 글의 계기가 되긴 했지만 제가 이 글에서 디아벨리 음반만을 문제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진호 님께서는 제 글에서 어떤 부분이, <디아벨리 변주곡>의 쇳소리를 듣고 피곤해서 착각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나요?

    해석의 기조에 대한 저의 문제제기는 소콜로프 본인만이 아니라 소콜로프가 최고의 거장으로 통하고 있는 음악계 전반을 향하고 있습니다. 소콜로프가 우리 시대 가장 탁월한 연주자 중 한 명이라는 데에는 별 이의가 없지만, 가장 뛰어난 자가 보여주는 한계야말로 우리 시대 자체의 한계일 테니까요.
  • 2017/03/23 14:06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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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3 22:22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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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3 22:15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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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4 10:53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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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4 11:47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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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4 11:44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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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4 11:48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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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5 10:11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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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5 10:13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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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5 06:42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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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5 23:02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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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5 23:03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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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5 23:03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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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5 23:59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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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6 16:57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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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7 08:24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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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7 11:04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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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ㅁ 2017/06/20 02:30 # 삭제 답글

    소콜로프가 언제부터 표준적인 거장이 되었나요? 애초부터 기인으로 유명했는데

    염두에 두고 있는 이상적인 피아니스트는 누군가요?
    미켈란젤리랑 디누 리파티 중에 꼽자면 누구에 가깝나요?
    이유도 듣고 싶네요.
  • postludium 2017/07/04 09:17 #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와서 죄송하게도 답이 늦었습니다. 익명 댓글을 다셔서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히 답변을 적어봅니다. 피아노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은데 다만 조금만 더 예의바르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저도 소콜로프가 이렇게까지 권위를 가지게 된 경위는 궁금합니다. 애초부터 기인으로 유명했던, 그래서 그런가 한국에서는 참 오랫동안 안 알려졌는 사람인데 말이지요, 한편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소콜로프가 애호가들 사이에서 구별짓기의 도구로 쓰였으며, 계속해서 '좀 아는 사람들이 듣는 음악'으로 마케팅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제 인상일 뿐이며 국내 음반 시장과 마케팅의 역사는 잘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 인상이 잘못되었으면 수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2) 염두에 두고 있는 이상적인 피아니스트는 없습니다. 저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으며, 연주는 작품을 이해하는 경로일 따름이라고 봅니다.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로 꼽는 사람들이 몇 있지만, 모두 어떤 작곡가의 해석자로서 좋아할 뿐이지, 그 자체로 '이상적인 피아니스트'라고 보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몇 명 꼽자면 켐프의 베토벤과 슈베르트, 코르토/로젠탈의 쇼팽, 슈나벨/브렌델의 모차르트와 베토벤, 소프로니츠키의 쇼팽과 스크랴빈 정도가 금방 떠오르고 이 피아니스트들은 다른 연주들도 대체로 신뢰합니다. 이 피아니스트들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지울 수 없는 차이점도 있다고 봅니다.

    3) '이상에 가까운 피아니스트'를 미켈란젤리와 디누 리파티 중에서 꼽으라고 주문하신 것은 ㅁㅁ님께서 생각하시는 피아노 연주의 이상이 미켈란젤리와 리파티의 두 갈래로 나뉘기 때문인가요?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피아니스트들과 비교해 보자면, 두 거장들은 차이점만큼이나 공통점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질문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선택지를 두 개 주시면서 제 생각이 ㅁㅁ님이 예상하시는 범위 안에 있으리라고 상상하시는 모양입니다만 그렇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아무튼 저는 리파티를 좋아합니다. 리파티의 칸타빌레와 부드럽게 빛나는 음색, 굳이 모든 것을 해석하려 들지 않고 음악이 쭉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시선을 귀하게 여기고, 미켈란젤리가 가끔씩 연출하는 정적인 고요, 경직성을 불편하게 여깁니다. 리파티의 브장송 실황도 훌륭하지만 쇼팽 뱃노래와 소나타 3번은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며 두 곡을 연습할 때도 참고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리파티가 제게 '이상적인' 피아니스트라는 말도 아니며, 미켈란젤리가 잘못된 예술가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제 왜 제게 이 두 선택지를 제시하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ㅁㅁ 2017/08/22 03:13 # 삭제 답글

    예의가 없었다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대중적인 인기를 과잉해석하시는 듯 하여 조금 댓글이 공격적이었네요.

    표준적인 거장을 언급하시기에, 비교적 표준적인 테두리 내에서 대부분의 평론가들의 입맛을 기복없이 설득하는 대표적인 연주자가 저 둘이라고 생각했기에 물어본 것입니다. 물론 표준적 연주가 이상적이라는 잣대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요.

    미켈란젤리와 리파티는 말씀하신 것처럼 텍스트에 충실한 공통점 만큼이나 스타일 상에 분명한 차이점이 있기도 하기에, 또한 앞서 postludium님 글을 읽은 저로서는 그에 대한 상세한 부연을 기대했던 것이지요.

    충분한 답변이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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