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쿨에 대한 메모 음악

1. 쇼팽과 콩쿨만큼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는 없다. 그러니 우승자를 가리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2010년에 아브제예바가 분더나 트리포노프보다 피아노를 잘 쳤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그녀가 이겼다면, 폴란드 심사위원들 앞에서 쇼팽 음악의 어떤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전통의 요소들은 오늘날 우리가 쇼팽답다고 부르는 특징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호흡이 긴 성악적 표현과 주관적 리듬 운용, 화성의 울림보다 대위법의 움직임에 주목한 구조 해석, 여리고 희미한 뉘앙스, 웅변과 폭력의 배격, 내향적이고 부드러우면서도 밀도 높은 음색(쇼팽은 피아노 뚜껑을 닫고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다), 모든 의미에서 정신적 귀족성.

신기한 점은 쇼팽 예술의 본질이 위의 요소들에 있다는 것은 다들 알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쇼팽의 감수성은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쇼팽다운' 연주는 대규모 콘서트홀에 어울리지 않는다. 쇼팽 자신의 연주가 그랬다). 점점 모든 피아니스트가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하는 세상에서 옛 쇼팽 해석의 전통은 지키기 쉬운 가치가 아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과 소련의 음악계는 나름대로 객관적이고 현대적인 피아니즘을 추구하면서, 1940년대 이전까지의 낭만적 연주를 '주관주의'라는 딱지를 붙여 쫓아냈다.

그 상징적 장면이 1960년의 쇼팽 콩쿨일 것이다. 우승자는 폴리니였다. 쇼팽의 감성과 전혀 맞지 않는 피아니스트가 콩쿨 우승을 하고, 이후 수십년간 쇼팽 연주의 권위자로 군림한 것이다. 악보를 낱낱히 파헤쳐 드러내는 분석을 통해, 혹은 철저하게 정제된 초절기교를 통해 쇼팽에 접근하는 폴리니가 세계를 제패했다는 사실은, 옳든 그르든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는 의미이다. 콩쿨의 심사위원장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은 동료 심사위원들에게 말했다. "우리 중에 저 소년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없소." 나는 그의 말에 어떤 쓸쓸함이 배어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폴리니와 같은 연주자들이 떠오르면서, 코르토의 손에서 찬란하게 울렸던 음악, 쇼팽의 저 귀족적 감상주의는 이제 쇠락한 늙은이들과 함께 사라져가는 것이다.

내가 방금 귀족적 감상주의라고 부른 것은 쇼팽 예술의 핵심 요소이긴 하지만, 오늘날 환영받는 감성은 아니다. 쇼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쇼팽다움이 쇼팽의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수록 드는 생각은, 쇼팽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드물다는 것이다. 피아노 동아리에서 많이 봤던 패턴은, 쇼팽으로 시작했지만 19세기 레퍼토리를 섭렵하다 보니 쇼팽이 재미없어졌다는 친구들이다. 사람들은 음악에서 쇼팽다움보다 대개 다른 것을 좋아한다. 그게 문제는 아니다. 쇼팽다움은 예술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나에게는 그렇지만.

이처럼 쇼팽의 전통은 이렇게 단절되기는 했지만 잊혀지지는 않았다. 어쨌든 코르토와 루빈슈타인의 음반은 젊은 세대의 음반과 나란히 팔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낭만적 해석에 대한 향수가 생겼다. 세상 어디에서도 전통적 쇼팽 연주자를 양성하지 않지만, 일각에서는 우리 시대에도 '쇼팽다움'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 잃어버린 전통의 흔적을 재생해보일 수 있는 사람을 꾸준히 찾아온 것이다.

쇼팽 콩쿨은 부분적으로 그런 시도였을 것이다. 2005년의 블레하츠는 과장하지도 무리하지도 않았고 완벽하지도 않았지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브제예바는 코르토를 아주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참조한다. 그녀의 연주에는 분더와 트리포노프에게 없는 고통의 감각이 있다. 쇼팽에게 음악을 표현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선율에 떠오르는 슬픔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베토벤과 슈만에게서 자신의 손으로 심연을 파 들어가는 의지를 느끼고 있었고, 이것을 하나의 음악으로 세공하는 것은 무서운 작업이었다. 쇼팽의 노래는 유려하지만 유창하지 않다. 그를 연주할 때는 몸으로 아파야 한다.

2. 조성진은 특별히 쇼팽답게 연주했다기보다는 결선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가장 피아노를 잘 쳤기 때문에 우승한 것 같다(이 말은 절대 기교만 우수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의 연주에는 진짜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 피아니스트로서 더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가 이번 우승을 계기로 삼아 쇼팽의 스타일에 이르려는 진지한 탐구를 계속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폴리니는 쇼팽 콩쿨 우승 직후 공개연주를 중단하고 미켈란젤리에게 레슨을 받았다. 블레하츠는 지금 철학과에서 음악미학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그런 수련의 기간을 한국에서 스타덤에 올라 헛되이 날려버리지 않기를 빈다.

그의 선배들을 둘 꼽아보면, 손열음은 피아노를 잘 친다는 느낌인데, 김선욱은 베토벤을 잘 친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예술가 자신에게 후자가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고전음악 해석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훌륭한 피아노 연주보다도 베토벤의 음악, 쇼팽의 음악이 더 좋다.

한국이 세상에서 악기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을 양산하는 나라라는 사실은 이제 조성진에 이르러 증명이 된 것 같다. 이제 그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깨달을 차례다. 음악은 금메달을 따면 끝나는 스포츠가 아니다. 연주자들의 활동은 사회의 예술적 저변과 연결되어야 한다. 한국의 음악계에 깊이와 다양성을 주기 위해 필요한 사람은 훌륭한 연주자가 아니라 훌륭한 해석자이다. 다시 말해 콩쿨과 극장과 시장에서 인정받은 제너럴리스트가 아니라, 한 작곡가의 스타일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스타일을 세련해 나가는 스페셜리스트이다. 백건우 이후 한국에서 다시 그런 연주자가 나올 수 있을까?

3. 아무튼 주위에서 쇼팽이 자주 회자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옛날식 '쇼팽다움'의 진수를 보여주는 피아니스트 한 명을 소개한다. 모리츠 로젠탈(1862-1946). 폴란드 태생으로 처음에는 쇼팽의 제자 미쿨리, 나중에는 리스트를 사사했다.

Chopin, Mazurka Op. 33, No. 4 (Moriz Rosenthal)

덧글

  • ㅇㄴㄷ 2017/06/26 22:43 # 삭제 답글

    고통의 감각 공감합니다. 아브제예바 다 욕하던데 참으로 안타까웠다는 어찌나 사무치고 담담하게 눈물을 쏙 빼던지... 본선에서의 쇼팽 소나타 2번 1악장 그것보다 와닿는 해석은 근래의 피아니스트들에게선 들어본 예가 없었어요.
  • postludium 2017/07/04 09:17 #

    반갑습니다. 아브제예바, 실황을 꼭 보고 싶기도 하고 발전을 많이 기다리는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